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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발굴

지역에서 문제라고 생각되는 것에 대한 주장과 주장을
설명하는 부연설명을 기재해주세요.
주장

'나주'하면 떠오르는 문화재가 없다.

부연설명

나주에는 80여개에 달하는 문화재가 있으나 그 중 어떤 문화재도 나주의 대표적인 문화재로 자리매김하지 못했다.

위치

58263

전남 나주시 시청길 22 (송월동, 나주시청) .

구성원
  • 이름김우현
주장의 객관적 근거를 기재해주세요.
근거1

국보 나주 신촌리 금동관

나주 반남면 신촌리 9호 무덤에서 발견된 높이 25.5㎝의 금동관이다. 나주 신촌리 9호 무덤은 1917∼1918년에 일본에 의해 발굴 조사되었다. 이 금동관은 삼국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외관과 내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관인 모자는 전북 익산 입점리(사적)와 일본에서도 비슷한 것이 출토된 바 있어 백제와 일본과의 문화 교류 관계를 살피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금동관의 주인은 당시 이곳을 지배하던 세력의 최고 지도자였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다만 이 금동관이 현지의 토착 세력에 의해 제작된 것인지 백제로부터 하사받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하지 않다.

근거2

보물 나주 향교 대성전

향교는 공자를 비롯한 여러 성현에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나주향교는 태조 7년(1398)에 세워 제사와 교육기능을 수행하다가 신학제 실시 이후로는 제사 기능만을 수행하고 있다. 대성전은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교육기능을 수행하는 강당인 명륜당보다 위쪽에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나주향교는 명륜당과 대성전의 자리가 바뀌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평면과 세부기법에서 조선 중기의 전형적인 향교 대성전 양식을 찾아 볼 수 있는 좋은 예이며, 서울문묘·강릉향교·장수향교와 더불어 가장 큰 규모에 속하는 중요한 향교문화재이다.

근거3

보물 운흥사 불조삼경

『불조삼경(佛祖三經)』은 원나라의 고승인 몽산(蒙山)덕이(德異)가 석가가 설법한『불설사십이장경(佛說四十二章經)』과 석가가 열반에 들어가기 직전에 최후 가르침인『불유교경(佛遺敎經)』, 그리고 중국 위앙종(僞仰宗)의 개창조로 알려진 위산 영우(靈祐)의 어록인『위산경책』을 합집한 책이다. 운흥사 소장본『불조삼경』은 현존본 중 가장 이른 시기인 1361년에 판각한 책판에서 인출한 책으로서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고려시대의 불교학 연구의 경향과 인쇄 출판문화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